파충류는 평생 성장을 멈추지 않기에 주기적으로 낡은 허물을 벗습니다. 건강한 개체는 스스로 습도를 조절하며 깔끔하게 허물을 벗어내지만, 사육 환경이 적절하지 않으면 허물 조각이 몸에 달라붙어 남게 됩니다. 이를 **'탈피 부전(Stuck Shed)'**이라고 부릅니다.
1. 탈피 부전은 왜 위험할까요?
단순히 지저분해 보이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특히 발가락 끝, 꼬리 끝, 그리고 눈 주위에 남은 허물이 위험합니다.
혈액 순환 장애: 남은 허물이 마르면서 수축하게 되는데, 이는 마치 고무줄로 환부를 꽉 조이는 것과 같습니다. 이 상태가 방치되면 혈액이 통하지 않아 해당 부위가 까맣게 변하며 괴사하고, 결국 저절로 떨어져 나가는 '자가 단선'이 일어납니다.
감염 위험: 허물과 피부 사이에 습기가 갇히면 세균이나 곰팡이가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됩니다.
2. 탈피 부전 예방을 위한 사육 환경
가장 좋은 치료는 예방입니다. 탈피 징후(몸이 뿌옇게 변하는 '백탁' 현상)가 보인다면 다음을 점검하세요.
습도 올리기: 평소보다 사육장 습도를 10~20% 정도 높여줍니다. 분무 횟수를 늘리거나 젖은 수건을 사육장 위에 올려주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거친 구조물 배치: 파충류는 몸을 비벼서 허물을 벗습니다. 너무 매끈한 벽면만 있는 것보다 유목이나 표면이 거친 돌(수석)을 넣어주면 스스로 허물을 제거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수분 섭취: 탈피 중에는 몸의 수분이 많이 소모됩니다. 신선한 물을 언제든 마실 수 있게 준비해 주세요.
3. 안전하게 허물을 벗겨주는 '온욕' 방법
이미 탈피 부전이 발생했다면 사육사가 개입해야 합니다. 이때 억지로 손으로 뜯어내는 것은 생살을 뜯는 것과 같은 고통을 줄 수 있으므로 반드시 '온욕'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온도 맞추기: 사람 손에 미지근하게 느껴지는 28~30°C 정도의 물을 준비합니다. (파충류에게 너무 뜨거운 물은 화상을 입힐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불리기: 개체의 발이 잠길 정도의 얕은 물에 10~15분간 넣어둡니다. 이때 개체가 탈출하지 못하도록 뚜껑이 있는 통(환기구 필수)을 활용하면 좋습니다.
부드럽게 제거: 허물이 충분히 불었다면 젖은 면봉이나 핀셋을 이용해 살살 문지르듯 벗겨냅니다. 특히 발가락 끝에 링처럼 감긴 허물이 없는지 꼼꼼히 확인해야 합니다.
사육사의 한마디
저도 초보 시절, 레오파드 게코의 발가락 끝에 남은 아주 작은 허물을 무심코 지나쳤다가 발가락 한 마디가 짧아지는 사고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미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그 이후로는 탈피 기간만 되면 돋보기를 들고 발가락 하나하나를 검사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여러분도 "알아서 벗겠지"라는 생각보다는 "도와줄 게 없을까?"라는 마음으로 세심히 관찰해 주세요.
[이번 편 핵심 요약]
탈피 부전의 주된 원인은 낮은 습도와 비빌 곳의 부재다.
발가락과 꼬리 끝에 남은 허물은 괴사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허물을 제거할 때는 억지로 뜯지 말고 미지근한 물에 온욕시켜 충분히 불린 뒤 면봉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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